한국을 사랑한 美 독립운동가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 거행
한국을 사랑한 美 독립운동가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 거행
  • 김양혜 기자
  • 승인 2019.08.1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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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와 시민 등 400여 명 참석, 헐버트 박사 추모해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에서 열린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에서 김동진(오른쪽 셋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등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박사가 별세한 지 70주년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지난 9일 서울 100주년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날 추모식에는 독립유공자와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추모사와 헐버트 박사가 옮긴 서양식 악보로 연주하는 아리랑 공연,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사업회 측은 이번 추모식에서 헐버트 박사 부인이 지난 1910년 미국 언론에 게재한 '일본인의 외교는 속임수가 전부다'라는 내용의 글을 공식적으론 처음으로 소개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부인의 글을 담은 헐버트 박사의 일대기는 이번 8월 말쯤 출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호머 B, 헐버트. (국가보훈처 제공)

미국 버몬트주 태생인 헐버트 박사는 1886년 23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와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 자문을 맡아 광무황제(고종)를 보좌했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 후에는 고종 친서를 품고 미국에 특사로 파견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역설했고, 이듬해에는 '한국평론'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을 폭로했다.

1907년 이상설 등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 참석해 을사늑약의 무효화와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을 호소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미국에 돌아간 후 40여 년 만인 1949년 7월 29일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 참석을 위해 방한했던 헐버트 박사는, 불과 일주일 뒤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생전 소망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50년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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